대한민국 육군에서 운용하는 차륜형 자주포로 105MM 견인곡사포인 M101을 차량에 탑재하고 사격제원을 입력 및 화포 방열 등을 자동화하였다. 제식명칭은 K105A1이고 수출용 명칭은 EVO-105다. 2009년 삼성테크윈이 방사청에 제안한 차량탑재형 구경 105mm 자주포가 신개념기술시범사업(ACTD)에 채택되어 2010년부터 삼성테크윈 주도로 개발했으며, 2011년 시제품 완성 후 시험평가를 거쳐 2014~2015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105밀리 곡사포 성능개량사업으로 공식적으로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이후 2017년 6월 28일 방위사업청에서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고 한국군 제식장비로 인가되었다. 2018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양산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전력화가 진행되었다. 포병에서..
120mm 자주박격포는 120mm 박격포를 K200A1 장갑차에 장착하여 운영하는 무기체계이다. 120mm 박격포는 기존 4.2인치 박격포를 대체한 것인데 사거리는 최대 2.3배, 화력은 1.9배 증가되었다. 또한 기존의 박격포는 수동사격이었느나 신형 120mm 박격포는 자동발사기능이 있으므로 성능이 대폭 개선된 것이다. 사격통제체계가 결합되어 신속한 대응 및 사격이 가능하다. 그리고 장갑차에 탑재하여 자주화시킨 것은 동일하나 기존의 4.2인치 자주박격포는 자체 회전 기능이 없었으나 120mm 자주박격포는 박격포 자체가 360도 회전가능하므로 장갑차가 방향을 전환하지 않아도 사격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발사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어 운영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120mm 자주박격포는 자동화 사격지휘체계를 ..
박격포는 화포의 한 종류로서 포탄이 고각(높은 각도)으로 발사되고 떨러지는 탄의 각도도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특성을 가진 무기체계이다. 박격포의 발사각도는 일반적으로 45도 이상이다. 그리고 곡사포나 전차포와 같이 격발장치나 약실폐쇄장치가 없이 단순한 구조의 격침을 가지고 있고 포신의 짧은 것이 특정이다. 포신이 긴 곡사포에 비해서 사거리는 짧지만 구조가 단순하고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벼우므로 보병에서 많이 사용하는 포 체계이다. 박격포가 단순한 구조이므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유탄발사기와 함께, 박격포는 현재에도 보병에게 가장 싸고 가장 가볍고 가장 간단하게 무엇보다 가장 신속하게 화력을 적에게 퍼부을 수 있는 유용한 화기이다. 상당한 사거리에, 충분한 정확도를 지니며, 같은 구경의 화력은 곡사..
81mm 박격포-Ⅱ 그림 (출처:방위사업청) 81mm 박격포-Ⅱ는 박격포를 경량화하고 디지털가늠자, 거리측정이 가능한 관측장비, 사격제원계산기 등이 통합된 신형 박격포이다. 관측장비는 위치정보시스템(GPS)가 내장되고 레이저로 거리측정이 가능하고 사격제원계산기에 의해 자동으로 사격제원을 산출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이 적용되어 목표를 정확하고 빠르게 관측하고 신속하게 포 사격을 수행할 수 있다. 관측장비는 적외선 카메라와 레이저 거리 측정 방식을 이용해 주간 2㎞, 야간에는 1㎞ 떨어진 표적에 대한 정확한 좌표를 획득할 수 있다. 사격제원계산기는 관측제원입출력기를 통해 관측장비에서 연동받은 정확한 관측제원으로부터 표적위치와 포 자세정보를 받아 사격 제원을 산출한다. 81㎜ 박격포-Ⅱ는 포판과 포신의 무게가 ..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때부터 시작하여 1960년대 까지 이어진다. 1960년 2월 핵실험을 성공하고, 1971년 핵탄두를 탑재한 SLBM인 M1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과학자들도 맨해튼 계획에 참가했으나, 영국과 미국 과학자들과는 달리 프랑스 과학자들은 3류 취급(미국 1류, 영국 2류)을 받으며 중수로 건설과 플루토늄 분리 작업에만 부분적으로 참가하는데에 그쳤다. 다만 프랑스 과학자들도 핵폭탄의 중요성을 알고 어떻게든 자국에 이 사실을 알리려 했다. 특히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프랑스가 해방되면서 맨해튼 계획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프랑스 과학자들은 어떻게서든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고 미국은 이걸 막으려고 진땀을 흘려야 했..
구 소련의 핵폭탄(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최초의 프로젝트는 Soviet atomic bomb project(러시아어 : Советский проект атомной бомбы)였다. 이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때에 스탈린이 승인한 비밀 연구개발 프로그램이었다. 소련 과학계는 1930년대 전반기에도 핵폭탄 제조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으나 구체적인 제안은 1940년에야 가능했다. 1941년 2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소련에서 핵무기 프로그램은 크게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핵무기 관련 작업이 비밀로 분류되지도 않았고 논문도 학술지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스탈린도 러시아 과학자들이 소유하고 있던 핵 지식과 소련 군 기술 ..
영국의 핵폭탄 개발은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부터 시작되어 1952년에 첫 핵폭탄 실험을 성공하고 1957년에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1938년 독일의 물리학자 Otto Hahn과 Lise-Meitner가 핵분열현상 발견에 성공함으로써 독일이 원자탄 개발에 앞서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 지도자들은 원자탄 개발을 국가의 존망이 달린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어떻게 해서든 독일보다 먼저 원자탄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1940년 4월 보수당 정부는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내각 산하에 『모드 위원회(Maud Committee)』를 설치하여 원자탄 개발의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은밀히 지시하였다. 과학자들로 구성된 모드 위원회는 연구결과 보고를 통해 원자탄 개발이 현실적으로 가능..
미국은 핵무기를 최초로 개발하고 배치한 나라일 뿐 아니라 유일하게 전쟁에 사용한 국가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39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45년에 핵폭탄의 개발을 완료하여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완성하였다. 1945년 8월6일과 9일에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15kt 위력의 리틀 보이(Little Boy)와 팻 맨(Fat Man)을 투하하여 실제 핵폭탄을 사용하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항목을 받아내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지었다. 이 후 미국은 1996년까지 핵폭탄과 핵폭탄을 발사, 투하할 수 있는 미사일, 폭격기 등을 개발하는데 현재 가치로 약 9조 달러를 투입하였다 그리고 냉전이 종료..
핵폭탄이 아닌 비핵무기 중에서 위력이 강한 폭탄으로 모든 폭탄의 어머니로 불리는 MOAB과 모든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FOAB가 있다. MOAB은 미 공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고위력의 폭발화약을 이용한 폭탄으로 모든 폭탄의 어머니, Mother of All Bombs라 칭하고 있다. 그리고 FOAB는 러시아에서 개발한 대형 폭탄으로 모든 폭탄의 아버지, Father of All Bombs라 부르는 것으로 MOAB보다 파괴력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MOAB는 미국에서 개발된 초대형의 폭탄으로 정식 모델명 및 이름은 각각 GBU-43/B, Massive Ordnance Air Blast이다. 약어로 줄이면 MOAB으로 별칭인 모든 폭탄의 어머니를 뜻하는 Mother of All Bombs와 같다..
전차(戰車)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전투에 쓰이는 차로서 장갑으로 방어가 되어 있다. 탱크(tank)로도 많이 불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차는 무한궤도를 갖추고 있으므로 험지에서 기동성이 뛰어나고 적 전차 등의 튼튼한 목표물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 강한 직사화포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적의 공격에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방어력을 가진 두꺼운 장갑으로 방어를 하고 있다. 장갑을 완비한 장갑차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병이 탑승하여 안전한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장갑차와 전차는 별도로 구분하고 있다. 전차는 지상병기의 제왕으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무장과 방호력을 갖추고 있고 군사과학기술의 집약체이므로 해당 국가의 육군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준 전차나 선군호 및 폭풍호는 국내외 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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